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누가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참으로 어리석다 하겠습니다. 만약 같은 실수를 어느 집안에서 대대로 반복하고 있다면 혀를 끌끌 찰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지역사람들이 다들 그러고 있다면 정신적 전염병인가 의아해 할 것이고, 만약 전인류가 인류의 출현 이래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면, 누군가 뭔가를 시도해서 이런 전인류적 상황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 씩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실수란 … 준비하거나 훈련하지 않고도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좋은 자녀양육을 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관념입니다.

한번 주위나 인간의 역사를 둘러보십시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가정들이 몇 %나 될까요? 가끔 부부가 다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부부가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거나, 이혼을 하거나, 혹은 이혼만 안 하고 같은 방을 안 쓴 지가 몇 년이 되거나, 배우자를 때리거나, 부부의 관계가 심히 악화되어서 아이들에게 우울증을 주거나 하는 경우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2016년 11월 25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의하면 1980년의 이혼율이 23%였는데, 2015년에 17%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은 좀 저희를 오도하는 수치라고 봅니다. 일단 미국은 결혼을 안 하고 사는 동거커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1960년에는 동거커플이 44만 명이었는데, 2004년에 5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해마다 10만 명 씩 늘어나는 추세이니 2014년에 600만명을 넘어섰을 것이고, 2017년 추산은 약 630만명입니다. 2017년 통계상 결혼한 사람들이 6100만 명이니,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며 사는 커플이 결혼한 커플들의 10%보다 훨씬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율이 줄었다고만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또한 2012년 12월 28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의하면 지난 수년간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약 44%가 비혼커플의 자녀라는 것이고, 30세 미만의 산모가 낳는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비혼커플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은 물론이고 육체적 발달장애 및 정서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이혼율이 만만치 않습니다. 2017년에 26만 4500건의 결혼이 있었던 반면에 10만 6천 건의 이혼이 있었습니다. 물론 2017년에 결혼한 그 커플들 중에서 10만 6천 쌍이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에 이것은 이혼율이 40%라는 이야기이고, 이것은 이혼 건수가 낮아진 작년의 이야기인 걸 보면, 이혼율이 최소한 40%라는 얘기입니다. 그밖에 한국도 동거커플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실제로는 현재까지 통계조차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은 일종의 전염병 중에서 가장 폐해가 심한 것이 이혼이기 때문이고 관계의 단절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혼의 경우 가정당 평균 자녀의 수가 2명이라고 친다면, 이혼으로 인해 관계의 사망 내지 극심한 관계적 고통을 체험하는 사람은 당사자 커플과 두 자녀 외에 양가의 부모들까지 합치면 최소한 8명입니다. 두 사람의 문제가 4배의 인구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평생을 가니 가장 폐해가 심한 일종의 사회적/관계적 전염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는데,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는 훈련도 안 받고 무작정 결혼하는 것, 그들이 좋은 아빠, 엄마가 되는 훈련도 안 받고 애들을 낳는 것은 사실 착륙을 할 줄 모르는 조종사가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영역에 있어서 참으로 이상합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조상들은 결혼학교도 안 다니고, 자녀양육 학교도 안 다녔는데 결혼만 잘해서 자녀도 줄줄이 낳고 잘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막연히 잘 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 조상들이 좋은 남편, 아내가 되었고, 좋은 아빠, 엄마가 되었는가 들어보면, 그런 사람은 가뭄에 콩 나기 격입니다. 불행한 결혼생활이 허다하고, 부모 자식 간에 나쁜 관계가 허다합니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한 것이고, 행복은 관계에 달려 있는데,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인 부부관계와 부모-자식 관계가 나쁘다면 그 인생은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들이 가만 보면 50%가 훨씬 넘습니다. 마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궐하는 전염병 같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흑사병이나 에이즈 등의 병에 대한 연구는 열심히 해서 그 병들의 치유법을 발견하고 그 병들을 점령해 가는데, 불행한 결혼과 잘못된 자녀양육 방법 그리고 더 포괄적으로는 잘못된 관계 경영이란, 인류 불행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커다란 원인은 사람들이 그다지 심각하게 점령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교 가려고 학교 공부 외에도 과외나 학원을 다니면서 기를 쓰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학원에서 몰입해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성품과 관계성을 가르쳐주고, 좋은 남편/아내가 되는 법, 좋은 아빠/엄마가 되는 법, 싸우지 않고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대화법, 문제가 생겼을 때 잘 풀 수 있는 갈등해결법 등을 가르쳐 주는 것은 정부도, 학교도, 기업도, 학원도, 가정도, 교회 같은 종교기관도 …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잘 되지 않을까?’라는 착각으로 매진하는 것은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나 지금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가 계속 관계나 결혼 및 자녀양육에 실패해서 극심한 관계적 고통을 반복해서 겪고 있는데 말입니다.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실수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바보짓 아닙니까? 그래서 인간들은 짧은 인생 동안에 시행착오를 통해 서로에게 큰 고통만 주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을 무한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인 1990년에 제가 남가주에서 다닌 한인교회가 미국침례교회 건물을 빌려쓰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 미국교회의 로비에 보니까 이상한 내용의 프린트물이 있었습니다. 그 제목은 Dad’s College,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아빠 대학”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처음엔 속으로, ‘미국은 대학교가 많다 보니 별 대학이 다 있군.’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엔 영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은 좋은 대학교에 가려고, 좋은 직장에 가려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 그것을 읽는 순간 제가 찾던 것을 미국은 일찍 시작했다 싶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대학 이름이 아니라 미국의 아버지들이 좋은 남편이요, 좋은 아빠가 되도록 훈련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온누리 교회가 부속기관인 두란노서원을 통해서 1995년 10월에 처음으로 아버지 학교를 시작했는데, 제가 본 그 프린트물이 Dad’s College의 첫 해가 아니고, 이미 시작한 것인지 모르니, 미국의 아빠 대학은 한국의 최초의 아버지학교보다 최소한 5년이 빠른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아버지 학교가 1995년에 시작됨에 이어서 어머니 학교는 그 4년 뒤인 1999년에 생깁니다. 그 후에 한국은 아버지 학교가 지금까지 23년이 되었고, 어머니학교가 99년에 생겨서 거의 20년이 지났는데, 앞에서 제가 언급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한국 사회가 잘 풀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참으로 좋은 시도이긴 하나,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는 몇 주간으로 한정된 훈련을 받는 것으로서, 저도 받아봤지만, 그 다음에 활로우업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제가 말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좀더 일찍, 좀더 오랫동안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국가적 차원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초중고 대학교 교육과정에 필수과목으로 결혼과 자녀교육이 법제화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초중고 대학교 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른생활/도덕/윤리 과목 시간에 건강한 가정 만들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정 이수를 모두가 반드시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교육과정 이수가 미필인 사람은 대학교 입학 때 및 기업들이나 기관들이 고용할 때에 마이너스 점수를 줘서 불이익을 겪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수하지 않으면 대학교 입시에 지원이 불가하도록 하고, 직장에 들어갈 때에도 서울대를 수석으로 나왔더라도 건강한 가정 만들기, 좋은 성품/관계성 기르기 과목을 이수하지 않았다면, 건강한 정서 및 좋은 성품/관계성 형성에 있어 문제의 소지가 농후할 확률을 가진 자로 판단해서 고용을 하지 않거나, 서류 전형상 낮은 점수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 교육과정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좋은 성품과 관계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성품과 관계성이 없이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성품과 관계성이 없이는 좋은 사회인이 될 수 없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대학교수, 좋은 공학자, 좋은 기능인, 좋은 판사, 좋은 국회위원, 좋은 교사, 좋은 공무원, 좋은 정치인 등 사회의 모든 직장인들은 좋은 성품과 관계성이 없이는 불친절하고 이기적이고 부정부패하기 쉬운 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아는 몇 목사님들은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에 하루는 어느 수업시간에 이런 질문을 교수님께 했다고 합니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좋은 목사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질문을 들은 교수님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좋은 목사가 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싸가지를 갖춰라.” 물론 여기서 쓰인 표현이 과격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답은 전사회적, 전국가적, 전인류적, 전역사적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즉, 다른 가치를 논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기본적인 사회인, 가정인으로서의 관계와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관계성은 사실 성품의 한 요소로서 포함되는 것인데 제가 굳이 분리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이고, 좋은 성품은 좋은 관계성 없이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로서는 성품이 참 훌륭한데 대인관계는 형편없는 사람이 성품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 과목에서는 적정연령이 되면, 예를 들어 초등학교 4학년 정도만 되면,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남녀가 결혼적령기가 되어서 결혼을 하기 직전에 이런 교육을 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두 남녀가 서로가 너무 좋아서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서로가 없으면 못 살겠다고 하는 마당에 그 결혼이 바람직한 성품과 관계성 및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준비가 되었는가를 논하는 것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입니다.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기준을 늦어도 중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입니다. 한 가지는 건강한 대화소통으로 어떻게 갈등을 푸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들과도 관점의 차이가 있고,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그런 갈등을 어떻게 파괴적이지 않고, 생산적으로 잘 푸는가를 배우고 연습하는 것은 앞으로 가정 및 직장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꼭 익혀야 할 필수덕목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들의 타고난 다양한 기질에 대해서 그 장단점을 배워서, 기질이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서로의 장점으로 남의 약점을 도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들 속에서 우울증, 강박증, 공황장애 등 마음의 병이 생기려 하거나 생겼을 때 어떻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또한 건강한 소그룹 속에서 치유회복을 꾀하는 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관계학에 대한 지식과 훈련이 없기 때문에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생고생을 평생하고, 모든 나라와 사회들이 그로 인한 천문학적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보는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논하기 전에 개인들이 얼마나 불행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일종의 볼모 상황에서 오랜 기간 동안 붙잡혀서 고생을 하면서 성격이 이상해지고, 정서가 불안해져서 나중에 사회의 중요한 포지션을 맡았을 때 건강하게 오래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도중에 무너지거나 일탈하는 경우가 많은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교육이 없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선진국 같아도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이 교육과정이 반드시 성경적 내용에 기초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을 만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만이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원리로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할 때에 가장 잘 작동하고 행복한지를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사실은 우리라는 인간들이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가를 적어놓은 사용자 매뉴얼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도 결혼도 성경의 창세기에 나왔듯 하나님께서 창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내용에 있는 원리대로 이 교육과정을 정립하지 않으면, 이 교육과정의 관점과 목표 및 가치가 다 흔들려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이 교육과정 및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제 이 거대한 전인류적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이 될 새로운 국가적 교육시스템이 언제 완성되어 우리 아이들이 혜택을 볼런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각 가정의 부모들이 지금이라도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일고 묵상해서, 그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갖춘 부모가 되어, 아이들의 성품과 관계성을 가르치고 확립하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성인인 저희들은 이런 교육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생고생을 할 만큼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더 늦지 않게 우리들이 성경을 잘 배워서 우리 아이들, 우리의 다음세대가 우리처럼 말도 안 되는 생고생을 하지 않도록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유산을 남겨줘야 하겠습니다.

김정우 목사 (발렌시아 새누리교회 담임, 661-964-8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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