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성경 귀절 중 하나가 요한3서 1장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물론 잘되고, 강건하라고 말하는 축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만 보면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 편지를 쓴 사도 요한이 수신인인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자여"라고 진정한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전에 있는 1절도 보면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라고 씀으로써 사랑한다는 표시를 2번이나 했습니다. 원래 이 서신을 사도 요한이 쓴 이유는 구원의 확신을 다지고,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리를 타파하기 위해서입니다. 허지만, 저는 별 내용이 없어 보이는 1, 2절이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왜냐면 사랑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메시지의 전달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사랑은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언제 행복하고, 언제 속상하고 불행한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각각 내 가치가 올라가서 자존감이 증진될 때와 내 가치가 손상을 입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면 내 가치가 올라가고 자존감과 더불어 행복감이 증진되고, 내 욕을 하면 가치가 떨어지면서 화가 나고 속이 상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가려고 하는 이유 등은 다 자신의 가치를 증대함으로써 자존감이 높아지고,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한 것입니다.

2. 사랑을 통해서 두 사람 간의 유대감이 확인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겐 소속감(the sense of belonging)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이런 관계가 없으면 그만이지, 이런 게 뭐 그다지 중요할까요? 아닙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람은 태생적으로 관계적, 공동체적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아담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다음에도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와를 지어서 옆에 붙여주신 것이고, 마태복음 6장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기도의 한 가지 모범인 주기도문을 봐도 "나"는 하나도 안 나오고 전부 "우리"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발달심리학적으로 사람은 0~2세의 유아 시절에 최소 한 사람(엄마, 아빠, 할머니, 보모 등)과 안정되고 따뜻한 유대관계(attachment)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그 발달단계에서의 필수성취 목표입니다. 아기가 그냥 옹알거리고, 응애 응애 우는 것 밖에 모르는 것 같아도 그때에 어른 한 명이 다가가서 따뜻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반응을 해 주고, 우유를 주고, 안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 따뜻한 유대관계를 맺은 아이는 커서도 세상에 대한 자신감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대체적인 신뢰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세상은 믿을 수 없고 차가운 곳이라는 세상관을 갖는 경향이 많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을 할 줄 모릅니다. 다들 자신들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랑이란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아닌 것이 전달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을 제대로 아는 유일한 분인 하나님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2장 35-4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 전체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1) 하나님께 사랑을 배우고, (2) 그 사랑을 내가 누리고 배워서, (3) 남들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남가주에서 5번 Freeway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14번 Freeway와 갈라지는 곳에 하늘에서 물이 내려오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L.A. 수문(L.A. Aqueduct)입니다(사진 참조). 남가주는 제대로 된 수원지가 없는 준사막이기 때문에 중가주의 요세미티 공원 옆의 Owens Valley라는 수원지에서 물을 몇 백 마일 끌어와서 남가주에 공급하는데, 그 첫 수문이 L.A. 수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물을 끌어온 것이 1913년입니다. 그런데 제가 조사해 보니, 1913년 당시 L.A. 인구가 4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로를 개설하고 나서 100년이 흐른 뒤인 2013년 인구는 4백만 명입니다. 무려 100배로 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물 덕분입니다.

그런데 영과 혼과 육으로 이뤄진 사람에게 육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이지만,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의 그 영과 혼에 생수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부모라면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하게 만든 한 아이의 잠재력을 겨우 1만큼 발휘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100을 발휘케 할 것인가는 내가 그 아이에게 얼마나 "생수"(사랑)을 전달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식으로 전하는 사랑은 곤란합니다. 세상적 가치의 사랑은 잘해 봤자 겨우 애증의 관계 정도 형성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배워서 전할 때, 한 아이/사람이 성장하면서 그 포텐셜이 1이 아니라 100으로 계발되고 발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교회 나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배워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확인하시고, 그 사랑을 주위에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면서, 좋은 사랑의 관계 속에서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사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김정우 목사

(발렌시아 새누리교회 담임, 661-964-8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