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목사 (발렌시아 새누리교회 담임, 661-964-8205)

오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성공은 무엇이고, 천국은 어디인가 좀 같이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대부분 한국서 미국으로 이민오신 분들일 것입니다. 일하러 오셨던, 유학생으로 오셨던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러 오셨을 겁니다. 그런데, 성공을 위해서 10년, 20년을 노력한 결과 이제 완전히 만족스러운 성공을 누리고 계십니까?

제가 옛날에 일하던 산호세 최대의 로펌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면 연봉을 50만불 받기 시작해서 약 2-3년마다 그 연봉이 2배가 되고, 400만 불 정도에서 대략 멈추게 됩니다. 다른 법 분야는 모르겠는데, 특허법 쪽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평균 7년을 일해야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데 불과 3년 반 만에 파트너가 된 중국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그 방에 들러서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대만에서 미국에 유학 와서 학부를 MIT공대를 나오고, 버클리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딴 다음에 로스쿨을 마친 뒤 그 로펌에 들어와서 그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그럼 장래 꿈은 뭐냐고 물었더니 조금만 돈을 더 벌고, 자신은 대만으로 돌아가 다시 학부를 재입학해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좀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하시는 일이, 삶이 행복을 줍니까? 물론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내가 행복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한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설계하셨을 때에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은사(재주)를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재주가 있는 일에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고 자꾸 또 해보면서 익숙해지고, 그런 선순환을 통해서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좀전에 제가 언급했던 그 로펌 파트너는 자신에게 맞는 것이 아닌, 남들이 말하는, 세상적 행복의 형태를 좇았기 때문에 저렇게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 돈 많이 번다고 행복합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지 못하고, 돈 때문에 자신이 하기 싫은 일, boring한 일을 하는 것은 상당한 비극인 것입니다. 전에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여의사는 의사 일이 그렇게 재미가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녀는 암반 등반, 즉 rock climbing을 매우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의사직을 때려치우고 무엇이 되었을까요? 바로 고층빌딩 창문을 닦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녀는 행복할까요? 그 여의사는 제가 아는 목사 사모의 친구인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답니다. 수입도 꽤 괜찮답니다. 하긴 가만 생각해 보면, 그녀가 좋아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옆에서 아무도 잔소리 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일하고 내려오면 수입이 생기는 그 일은 그녀에겐 상당히 행복한 직업인 것입니다. (그러나 저보고 그 일을 하라고 하면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을 것이고, 지금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

이처럼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고, 자신에게 맞는 행복한 일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변호사, 판검사, 의사, 박사, 교수, CEO 되라고 자신이나 자녀들에게 억지할 것이 아닙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입시생들만 24시간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한국인들은 대부분 성공병에 걸려서 뭔가를 이루려고 죽어라고 노력하고 일하고, 쉬는 시간에도 생각으로는 어떻게 성공을 이룰까 고민하느라고 스트레스에 찌들어있습니다. 이렇게 늘 overdrive 상태에 있는 이런 삶이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이렇게 정의하면 좋겠습니다. Doing이 아니라 Being의 가치에 기초한 성취. 우리가 Doing(남들이 좋다고 말하고 부러워하는 세상적 평균)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으면, 영원히 마음에 평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런 기준은 계속 moving target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존재인 Being의 가치에 성공의 기준을 둔다면, 그렇게 피곤하게 끊임없이 달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라는 존재에 고유한 가치가 내재하고, 그 가치에 큰 변동이 없음을 전제할 때에만 가능하겠지요.

대부분의 세상적 관점과 잣대를 가진 사람들은 Being보다는 Doing, 즉 그 사람이 이룬 것(돈, 직위, 사업규모, 유명도, 외모 등)으로 그 사람의 성공을 측정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만약 큰 사업을 했다가도 지금은 실적이 저조하다면 여러분의 세상적 가치는 하락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가치가 남들의 관점에 의해서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열등감과 우울증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이 유일하게 정확한 관점인데, 그것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속성을 닮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엄청나게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도 이미 사람은 내재한 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닮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피곤하게 내가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가진 애를 다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성숙한 기독교인들은 그래서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있고 쫓기는 표정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만드실 때 부여하신 고유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 실은 가장 중요한 성공인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성공여부와 별도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인생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저희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관계입니다. 부부관계, 친구관계, 부모-자식 관계, 직장 상사 및 동료들과의 관계 등 참 다양한 관계 속에 사는데, 이 관계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변수인 것입니다. 행복한 관계를 누리는 사람은 그다지 엄청난 환경 속에 사는 것 같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예를 들자면, 나를 사랑하는 엄마 품에 꼭 안긴 아이가 오두막에 살아도, 온통 사방에 적이 많은 재벌회사의 CEO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계를 잘 경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관계가 우리의 행불행을 좌우할까요? 왜냐면 사람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행복한데, 좋은 관계는 내 가치를 재확인 내지 회복시켜주고, 나쁜 관계는 내 가치에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나를 사랑해주는 관계는 내 가치를 인정헤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사랑이 아닌 관계는 내 가치에 손상을 입히는 느낌을 줘서 나를 화가 나고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궁극적으로는 다 자기 중심적 관점을 가지고 있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주관적 자기 사랑에 기인한 동기로 사랑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또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안다고 단정하고 사랑을 베풀 때에 그 사랑은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nuts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데, 제 아내는 nuts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제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걸 아는 아내는 신혼 시절에 저를 위한답시고 아이스크림을 사오는데 어떤 아이스크림을 주로 사왔을까요? 맞습니다. Nuts의 일종인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주로 사오고서 제가 행복해 할 줄 알았습니다. 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저도 좋아할 걸로 단정 및 착각을 한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의 사소한 예이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중심적 사랑을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3단계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무엇인지 먼저 배워야 합니다. (2) 그 사랑을 내가 한동안 누리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익혀야 합니다. (3) 그 다음에야 내가 배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1)~(3)이 성경의 마태복음 22장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파악한 다음에 그 사람에 맞게 섬기는 사랑입니다. 이 점은 성경 요한복음 10장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정의를 좀 확대하면 좋겠습니다. 지옥은 나중에 죽어서 가는, 불이 지글지글 날름거리는 “후라이팬 위” 같은 곳일 뿐 아니라 실은 이미 이 땅에서 서로 미워하고 상처 주는 수많은 관계에 놓인 삶임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실존적 삶은 이 땅에서의 지금부터 영원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나중에 죽어서 가는 “에덴 동산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격려/치유하는 관계들임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면, 지금이라는 시간도 영원의 일부인 우리 실존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영화 제목 중에 From Here to Eternity라는 것이 있지요? 제가 그 제목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우리의 실존은 from Here to Eternity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성공의 정의를 Doing이 아니라 Being이란 고유가치에 두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서 이 땅에서부터 좋은 관계 속의 천국을 누릴 때에, 저와 여러분께서 From Here to Eternity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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