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보내면서 K 집사님 내외분의 성탄축하 전화를 받았다. 42년 전의 교우들이지만 그간 우리는 변함없이 연락하면서 지내왔다. 요즈음은 카카오 톡까지 있어서 소식을 주고받기가 한층 더 편리하다.

이들은 40 여 년 전 120마일 밖 (Orange, TX) 에서 휴스턴에 소재한 우리 교회 (휴스턴 서울침례교회)에 출석했던 분들이다. 당시 한인 교회가 없는 오렌지 텍사스에서 미국인 교회에 참석하던 분들로서 이웃에 믿지 않는 부부에게 성경도 사 주고 복음을 전하며 가까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전도 대상자인 S 씨 부부가 주일마다 휴스턴에 있는 어느 교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왕복 240마일을 주일마다 휴스턴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교회인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는 이 부부가 그 먼 거리를 주일마다 찾아간다는 휴스턴에 소재한 우리 교회로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잔득 의심하고 왔던 이들도 우리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바로 그날 헌신하여 우리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래서 두 가정이 매 주일 함께 예배에 참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얼마 후에는 그곳에 사는 여러 세대가 함께 하면서 ‘오렌지 텍사스 구역’도 새로 생기게 되었다. 때때로 우리 부부는 집사님들과 함께 그곳 구역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늦어져서 자고 올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친교가 마치 어제일과도 같이 생생하다.

그곳에 사는 교우들은 주일이 되면 자동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려 교회에 도착할 때의 모습은 마치 개선장군들과도 같은 행복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들은 예배 전에 있는 주일학교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는 연령별)에 참석하기 위해 더 서둘러 오곤 했다. 이들은 이따금 저녁예배까지 참석하고 귀가했었는데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창 젊었던 K 집사 내외분은 40여년이 지나 머리가 흿긋 흿긋한 노인이 된 오늘까지 우리와 한결같이 서로 문안하며 지내 온 것은 예수님 때문이다. 오늘도 전화를 받으면서 40 여년 전에 환한 얼굴로 교회문을 들어서던 젊은 두 부부의 그때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나는 “그때 왕복 240마일을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참석했어요?” 라고 물었더니, “그때에는 120마일이 조금도 멀다고 느껴 본 일이 없었어요.” 라고 부부가 똑 같이 상기되어 말한다. 이어 말하기를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라고 서슴없이 말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자의 행복에는 시간과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증명하고도 남는 말이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42년이나 지난 오늘까지도 낡아지지 않고 똑 같은 행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흘러간 세월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지난날을 한 눈에 그려보면서 마냥 그 옛날이 나의 마음에도 그대로 머물러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맺어진 의리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한결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으로 얽혀진 과거의 행복이 오늘, 아니, 미래까지도 변할 리가 없음을 알려준다.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때문에 보다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누리는 주님의 제자의 삶이 되게 하소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복음 10:35).